10종 넘는 약을 두 달 넘게 먹는 사람이 171만 명입니다 — 그중 138만 명이 노인입니다
약을 챙겨 먹는 건 알림으로 풀리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. 그런데 숫자를 들여다보니 진짜 병목은 '내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아무도 전체를 모른다'는 쪽이었습니다.
부모님 약봉지를 정리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이런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. 내과에서 받은 봉투, 정형외과에서 받은 봉투, 안과에서 받은 안약, 그리고 홈쇼핑에서 산 영양제 몇 통. 각각은 다 이유가 있어서 있는 건데, 이걸 전부 합쳐서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.
숫자로 보면 이 장면이 얼마나 흔한지 드러납니다.
문제의 크기
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로 10종 이상의 약을 60일 넘게 복용하는 사람이 171만 명입니다(2025년 6월 기준). 2020년 112만 명에서 5년 만에 53% 늘었습니다. 이 중 65세 이상이 138만 명, 전체의 80.6% 입니다.
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나이대만 떼어 봐도 비슷합니다. 분당서울대병원 김선욱 교수 공동연구팀이 2012~2021년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은 66세 330만 명을 분석한 결과(대한노인병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):
- 35.4%(약 16만 명)가 5개 이상의 약을 90일 넘게 복용 — 2012년 32%에서 계속 증가
- **8.8%**는 10개 이상 복용
- **53.7%**가 '노인 부적절 약물'을 1종 이상 복용, 1인당 평균 2.4개
그리고 이건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. 같은 연구팀이 2015~2016년 국가 건강검진을 받은 66세 65만여 명을 5년간 추적한 결과, 노인 부적절 약물을 사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25%, 장애 발생 가능성이 46% 높았습니다.
66세는 아직 '젊은 노인'입니다. 이 숫자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.
왜 계속 늘어나는가
약이 늘어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. 연쇄 처방(prescribing cascade) 이라고 부르는 흐름입니다.
A약의 부작용으로 속이 쓰립니다 → 다른 병원에서 위장약 B를 받습니다 → B 때문에 다른 증상이 생깁니다 → 또 다른 과에서 C를 받습니다. 각 단계마다 의사는 합리적인 판단을 했습니다. 다만 아무도 A부터 C까지를 한 화면에서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.
여기서 진짜 병목이 드러납니다. 문제는 약을 제때 먹는 게 아니라, 먹고 있는 약의 전체 목록을 아무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. 환자 본인도, 각 병원의 의사도, 가족도 각자 조각만 봅니다.
기존 해법은 어디까지 왔나
이 문제를 정부가 방치한 건 아닙니다.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「내가 먹는 약! 한눈에」 서비스가 이미 있습니다. 최근 본인 확인 단계를 7단계에서 1단계로 줄이고 카카오톡 인증으로도 조회할 수 있게 개선됐습니다. 최근 1년치 처방·조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.
그러니 "복약 목록을 보여주는 앱"은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. 이미 있습니다.
다만 조회해 보면 남는 빈틈이 있습니다.
- 조회이지 관리가 아닙니다. 지금 이 순간의 목록을 확인하는 기능이지, 약이 바뀌었을 때 알려주거나 이력을 따라가지 않습니다.
- DUR을 거쳐 조제된 것만 잡힙니다. 처방받고 조제하지 않았으면 안 나옵니다. 그리고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애초에 이 경로를 안 탑니다. 홈쇼핑 영양제, 약국에서 그냥 산 소화제는 목록에 없습니다. 상호작용 사각지대가 여기 있습니다.
- 정작 약을 관리하는 사람이 못 봅니다. 다제약물 복용자의 80%가 노인인데, 실제로 약을 챙기는 건 상당수가 자녀나 배우자입니다. 본인 인증 기반 서비스라 대신 보려면 매번 부모님 휴대폰을 빌려야 합니다.
우리라면 어떻게 풀까
낰낰컴퍼니가 이 문제를 잡는다면 방향은 이렇습니다. 목록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, 이미 있는 목록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쪽입니다.
1. 조회를 상태로 바꾼다. 한 번 불러온 목록을 스냅샷으로 저장하고, 다음에 불러온 것과 비교해 "지난달과 달라진 약"만 보여줍니다. 사용자가 매번 전체를 읽고 차이를 찾아낼 필요가 없어집니다.
2. 공식 경로에 안 잡히는 것을 옆에 붙인다. 영양제와 일반의약품을 사용자가 직접 등록하는 칸을 둡니다. 정확도는 떨어지지만, 지금은 아예 기록이 없는 영역입니다. 빈칸보다는 낫습니다.
3. 보호자 공유를 1급 기능으로 둔다. 부모님이 한 번 동의하면 자녀 화면에서 계속 보입니다. 이게 빠지면 정작 관리하는 사람이 못 쓰는 도구가 됩니다.
4. 판단은 하지 않는다. "이 약은 위험합니다" 같은 판정은 넣지 않습니다. 대신 진료 때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한 장의 목록을 만듭니다. 연쇄 처방은 의사가 전체를 못 볼 때 생깁니다. 전체를 보여주는 종이 한 장이 실제로 필요한 물건입니다.
핵심은 4번입니다. 이 문제의 해결은 진료실에서 일어나야 하고, 소프트웨어가 할 일은 의사가 전체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까지입니다.
확인하지 못한 것
이 글을 쓰면서 검증에 실패한 수치가 있어 남겨둡니다.
여러 기사에서 "75세 이상 노인의 5개 이상 만성 복용 비율 70.2%, OECD 7개국 중 1위(평균 48.3%)"라는 수치가 인용됩니다. 원 출처를 특정하지 못해 본문에서 뺐습니다. 마찬가지로 "5개 이상 복용군의 입원 위험 18%·사망 25% 증가, 11개 이상은 45%·54%"라는 수치도 널리 인용되지만, 확인한 기사에서는 "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 결과"라고만 되어 있고 연구나 발표 시점이 특정되지 않았습니다. 그래서 본문에는 출처가 명확한 김선욱 교수 연구팀의 추적 결과(사망 25%·장애 46%)만 썼습니다.
또 하나. 위에 적은 「내가 먹는 약! 한눈에」의 한계는 공개된 서비스 안내를 근거로 정리한 것이고, 실제 사용자들이 무엇에서 막히는지는 별도로 확인이 필요합니다. 이 부분은 다음에 더 파보겠습니다.
이 글은 문제 구조를 분석한 기록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. 복용 중인 약의 조정은 반드시 의사·약사와 상의해 주세요.